데이비드 치퍼필드 추상적 형태에 깃든 외유내강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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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시로 변화시킨 연금술사들

데이비드 치퍼필드
추상적 형태에 깃든 외유내강의 아름다움

[David Chipperfield]

출생 1953.
목차
비 독창적 건축가이자 중용의 건축가
이론적 건축보다는 실질적 건축을 추구
비 파격적 건축가이자 외유내강의 건축가
전시회 "폼 매터스"


1953년 실내건축 장식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 남부에 있는 데본(Devon)의 한 농장에서 자랐다.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며 구조와 기술까지 동일한 비중으로 수업하는 보수적인 학교인 킹스턴 폴리테크닉에 진학해 건축을 공부하다가 진보적인 AA스쿨로 옮겨 모더니즘의 정수를 배운다. AA스쿨에서 렘 콜하스(Rem Koolhaas), 레온 크리에(Leon Krier),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 자하 하디드(Zaha Hadid) 등과 교류한다. 졸업 후 리처드 로저스와 노먼 포스터의 사무소에서 근무했으며 1985년 자신의 사무소를 설립해 현재까지 영국·독일·프랑스·일본·미국 등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영국 남부 데본의 농장에서 자랐다. 이런 성장 배경은 본능적으로 건축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붉은 흙의 언덕들, 경작지들의 흙 냄새, 빛나는 대지, 울타리를 넘나드는 시냇물 그리고 농장 일로 흘리는 땀 등은 어린 그에게 가장 강한 물리적·촉각적·건축적 경험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런 것들이 나에게는 프루스트 현상의 일종입니다. 내게 기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경작지의 흙입니다. ···그 냄새들은 믿을 수 없이 강한 것이었습니다. ···가장 강력한 건축적 체험이 이것들이었습니다.

아마도 그의 건축에 깃들어 있는 설명할 수 없는 온기의 정서는 여기서 나온 것인 듯하다.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조용한 사람'이다. 이 표현만큼 그를 잘 나타내 주는 설명이 또 있을까? 그의 목소리는 작고 나긋나긋하다. 수다스럽지 않고 차분하다. 조용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가는 데이비드 치퍼필드에게 근래에 상복이 터졌다. 2010년에는 영국과 독일에서의 건축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기사 작위를 받았고, 2011년에는 영국 여왕이 수여하는 건축 상인 로열골드메달(Royal Gold Medal)과 유럽연합에서 2년마다 수여하는 유럽 최대의 건축 상인 미스 반데어로에 상을 수상했다.

하나의 건축이 아니라 일생 동안의 작품 활동을 평가하며 상을 주는 로열골드메달을 수여하며, 영국왕립건축협회는 그의 작품에 대해 "차분하면서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디테일이 돋보이는 건축"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베를린의 신 박물관으로 미스 반데어로에 상을 수여하면서 유럽 건축가협회는 "현대와 과거의 놀라운 조화"라고 상찬했다. 이 모든 것은 데이비드 치퍼필드와 그의 건축을 이해하는 데 좋은 단편들이다.

1980년대 전반 영국에서 힘을 발휘했던 포스트모더니즘 유행과는 궤를 달리하는 상대적으로 작은 소규모 건축가 모임인 9H 갤러리를 창설하고, 젊은 세대의 대표적인 인물이 된다. 케네스 암스트롱(Kenneth Amstrong), 에릭 패리(Eric Parry), 알란 스텐튼(Alan Stanton), 존 포손(John Pawson), 폴 윌리엄스(Paul Williams) 에바 이리크나(Eva Jiricna), 릭 매더(Rick Mather), 데이비드 와일드(David Wild) 등이 모여, 전시회와 출판을 통해 많은 활약을 했다.

얼핏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탄탄대로를 달려온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쉬운 길이 아니었다. 영국에서 많은 건축가들은 대학 졸업 후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나 불안정한 강사 직업을 가지고 생계를 꾸려 나간다. 오히려 반 실업 상태에 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치퍼필드도 초기에는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그는 돌파구를 인테리어나 외국의 프로젝트에서 찾았다. 1985년 런던 슬로안 거리에 있는 이세이 미야케 상점 인테리어 설계는 런던 패션계에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일본과 가까워지도록 해 주었다. 이후 그는 4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름이 점점 알려지기 시작하며,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비 독창적 건축가이자 중용의 건축가
치퍼필드는 건축이란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대가들과 동시대의 선생들에게 배우고 끊임없이 자극받고 있음을 순순히 인정한다.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공간 구축의 힘,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의 문맥의 중요성, 티치노학파, 특히 루이기 스노치(Luigi Snozzi)의 장소의 감각, 알바루 시자의 맥락적 시학과 루이스 바라간(Louis Barragan)의 미니멀리즘에 깊이 자극받았다고 고백한다. 얼마나 건강하고 자연스러운가? 일부 건축가들이 외국 건축가의 작품을 베끼고 모방하면서 스스로의 작품인 양 시치미를 뚝 떼는 모습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건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고, 자기의 색깔을 내기 위한 습작 기간은 부끄러움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이러한 자극은 중견 건축가가 되어서도 계속 필요한 것이리라.

그는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내고 독특한 실험을 하기보다는 가까운 과거를 존중한다. 기꺼이 모더니즘 및 미니멀리즘 계보를 잇고자 한다. 그의 족보에는 미스 반데어로에(Mies van der Rohe), 루이스 바라간, 루이기 스노치, 안도 다다오 등이 거론될 수 있다. 이런 행보가 그의 정체성을 훼손시키지 않는다. 그의 건축에 보이는 기시감은 안이한 모방이 아니라, 창작과 역사의 선례 사이에 열린 조화의 수용에 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중용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모더니즘은 그에게 실패한 것도 아니고, 역사와의 단절도 아니다. 그는 케네스 프램튼(Kenneth Frampton)의 지적을 인용하며 이렇게 이야기 한다.

"모더니즘은 살아 있고 왕성합니다. 바라간, 시자, 안도처럼 모더니즘의 지역적 버전인 건축가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모더니즘이 보편적이고 개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모더니즘의 도그마인 기능, 추상적 형태, 효율, 기계, 기술의 한계를 인정하고 더 발전시켜야 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동시에 현재의 특성이라고 회자되는 일시성·변화·자극·부유성·선속성에 대해서도 이것들만이 전부라고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건축은 그 둘 사이의 그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다. 그는 여러 면에서 중용(과거와 현재, 모방과 창조, 전통과 현대···)을 추구하는 건축가이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 탐험과 탐구를 계속 해 나간다.

이론적 건축보다는 실질적 건축을 추구
건축가에게 철학·사상·이론·사고란 없어서는 안 될 존재 그 자체이다. 때때로 건축가들은 철학가이거나 사상가이거나 이론가가 된다. 건축가들을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이론을 표방하며 이를 건축화하는 건축가들과 건축의 실천을 통해 자신의 사고를 펼쳐나가는 건축가들이 있다. 치퍼필드는 이론적인 건축보다는 실질적인 건축을 추구한다. 이론을 먼저 만들고 이를 실행하는 것에 거리를 두면서, 작업을 통해 이론에 접근하려는 것이다. 건축은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존재이며, 이러한 힘을 통해서만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고 믿는다.

"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보다 소박하게 실제에 접근할 때 건축이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되는가에 놀라게 됩니다. 아름다운 건물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으며, 그 이상의 목적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장소, 형태, 공간 그리고 재료를 통해 표현된 건축의 물리적 힘을 신뢰하며 추구한다.

이 시대의 모든 담론을 담아 내고 그것을 표현하려는 욕심과 야망이 그에게는 없다. 그에게는 선언과 주장이 없다. 오히려 묵묵히 건축을 설계하고, 그것에 집중한다. 그래서인지 조용하거나 겸손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말이나 이론과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건축을 통해서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들이 주변의 건축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기를 바라는 것일 것이다.

비 파격적 건축가이자 외유내강의 건축가
현대 건축계의 이슈 메이커는 누구일까? 대중에까지 회자되는 스타 건축가는 누구일까? 그것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이거나, 엄청난 에너지로 세상을 휘몰아치는 자하 하디드, 살아 있는 건축을 만드는 유엔 스튜디오의 벤 판베르켈(Ben van Berkel) 등일 것이다. 이들의 작품은 대부분 매우 파격적으로 보인다. 파격적 형태, 조소적 형상,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재료의 사용 등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경이의 세계를 경험케 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파격도 필요하지만 절제와 소박 그리고 때때로의 침묵과 고요도 필요하다. 치퍼필드의 작업은 후자에 속한다.

"건축물 중에는 특별한 프로젝트로 사람과 관계를 맺고,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고, 건축의 큰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특별한 순간이나 판타지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건축이 아주 일상적인 것들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나는 요란하고 스펙터클한 것보다는 차분한 품격(quiet quality)을 선호합니다."

스펙터클하거나 파격적인 건축은 사람들로 하여금 건축과 거리를 두게 만든다. 사람들은 건축에 동화되지 않고 관찰자로 머문다. 그에 비해 조용하고 절제된 건축은 사람들을 포용하고 껴안는다. 그는 가히 외적으로는 조용하고 단순한 건축을 만들지만, 내적으로 풍요롭고 울림이 있는 건축을 만들어 낸다. 놀랍게도 그는 우리나라 백자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더 이상 응축될 수 없는 경지로 본질을 파고 들어가며 미를 추구하는 것은 보편적인 것입니다. 한국의 도자기에서 그런 미학을 발견했습니다. 한국의 도자기는 한국 역사의 특별한 순간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거기서 문화의 정점, 완벽함을 보았습니다. 특히 백자가 인상적이었는데 자기로서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게 그런 것입니다. 핵심적인 것, 강한 재료의 질, 형태의 명료함, 완벽한 것과 완벽하지 않은 것의 균형, 이것이 휴머니티입니다."

전시회 "폼 매터스"
런던 디자인 뮤지엄에서 전시했던 "폼 매터스(Form Matters)" 전의 작품 중 주요 작들을 전시하는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전시회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2011년 3월 6일부터 12일까지 있었다. 치퍼필드의 말처럼 전시 제목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 전시회였다. "형태가 중요하다"라는 뜻도 되고 "형태와 재료들"이라는 뜻도 된다. 스펙터클하고 파격적인 형태보다는 단순하고 순수 기하학적인 형태를 선호하는 치퍼필드의 전시회이기에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조용하고 소박한 형태가 더 소중하다. 절제된 형태가 더 오래갈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형태가 물질화 되는 것을 이 전시회를 통해서 느껴보라.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가 눈으로 현현하는 것은 재료라는 물질로 인해서다. 여러분들이 보는 물질들은 단지 물질이 아니라 건축의 본질이며 그 자체이다.

치퍼필드는 이렇게 말한다.

"전시회의 제목 "폼 매터스"는 우리가 건축가로서 작품에 대해 고민하는 두 가지 측면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형태와 자재, 모양과 물질, 형태적 아이디어와 물리적 구현입니다. ···재료 자체가 본질이라는 의미를 담은 셈입니다. 건축의 재료라고 하면 유리나 벽돌 같은 건물 표면의 재료를 떠올리지만, 그것은 정말 두께가 얼마 안 되는 껍데기(skin)에 불과합니다. 건축물은 외피, 그 이상입니다. 건물이 그 동네와 장소에 어떤 의미가 되고, 또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에 대해 고려하는 과정을 거쳐 형태와 재료를 결정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전시는 내가 했던 프로젝트의 이미지를 보여 주는 자리라기보다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현실화됐는지를 보여 주는 자리입니다."

전시회에 대해 단순한 모형의 집합들이어서 무미건조하고 심심했다는 반응이 있었는가 하면, 묵직한 감수성을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전시회였다는 평도 있었다. 이런 반응은 그의 건축에 대한 반응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의 건축은 심심하고 지루한가? 아니면 풍요롭고 깊은 울림이 있는가?



[네이버 지식백과] 데이비드 치퍼필드 [David Chipperfield] - 추상적 형태에 깃든 외유내강의 아름다움 (건축을 시로 변화시킨 연금술사들, 2013. 11. 10.,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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