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스튜디오 살아 있는 건축을 만드는 마법사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829492&ref=y&cid=55651&categoryId=55651

건축을 시로 변화시킨 연금술사들

유엔 스튜디오
살아 있는 건축을 만드는 마법사

[UN Studio]

설립연도 1998.
목차
이론의 탐닉 - 철학하는 건축가이자 과학하는 건축가
공간의 탐닉 - 철학하는 건축가이자 과학하는 건축가
재료의 탐닉 - 패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상상의 탐닉 - 마법사이자 건축가


유엔 스튜디오(UN Studio)는 네덜란드 부부 건축가 벤 판베르켈(Ben van Berkel)과 캘롤라인 보스(Caroline Bos)가 설립한 설계 사무소의 이름이다. 벤 판베르켈은 1957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태어나, 암스테르담 리트벨트 아카데미와 런던의 AA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리트벨트 아카데미에서는 건축뿐 아니라 인테리어 디자인 능력과 색채 감각을 키웠을 것이고, AA에서는 아방가르드 건축에 대한 도전 의식과 사상으로서의 건축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런던의 AA 건축학교에서 공부하던 1980년대에 판베르켈은 운명적으로 런던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던 캐롤라인 보스를 만나게 된다. 1988년 판베르켈 앤 보스 건축사무소를 설립하고 활동하다, 10년 뒤인 1998년에 통합 네트워크(United Network)를 표방하는 유엔 스튜디오로 개칭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점점 더 많은 부부 건축가들이 세상에 출현하고 있다. 팀 작업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건축계에서 같이 생활하고 호흡하는 부부야말로 더욱 좋은 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현재 활약하는 건축가들 중 괄목할 만한 작품을 보이는 부부 건축가로는, 미국의 로버트 벤투리와 데니스 스코트 브라운(Denis Scott Brown)의 벤투리·로치·스코트 브라운 설계사무소, 미국의 엘리자베스 딜러(Elizabeth Diller)와 리카르도 스코피디오(Ricardo Scorpidio)의 딜러 앤 스코피디오 설계사무소가 있으며, 토드 윌리엄스와 빌리 치엔의 토드 윌리엄스 앤 빌리 치엔 설계사무소 등이 유명하다.

유럽에는 OMA에서 함께 일하다 사무소를 만든 알레한드로 자에라 폴로(Alejandro Zaera Polo)와 파시드 무싸비(Fasad Mussavi)의 FOA가 있으며 MVRDV 위니 마스의 파트너인 야콥 판레이스와 나탈리 드프리스도 부부이다. 다만 이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부부 건축가 그룹이 둘 다 건축을 전공한 건축가 부부라면 유엔 스튜디오의 벤 판베르켈과 캐롤라인 보스는 다른 경우여서 흥미롭다.

그들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캐롤라인 보스는 유엔 스튜디오의 모든 프로젝트에서 분석가이자 비평가 역할을 한다. 판베르켈은 보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녀는 다른 종류의 건축가입니다. 그녀는 작가 집안에서 자랐기에, 사물들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그녀는 프로젝트들이 보다 더 개념적이고 언어적인 접근이 가능하도록 돕습니다."

이와 같이 그녀는 매우 탐구적이고 이론적인 건축가인 판베르켈의 배후에서 동력을 주는 엔진 역할을 한다.

통합 네트워크를 의미하는 사무소 명이나 이들이 지양하는 바는 우리에게 큰 자극을 준다. 미래 설계 사무소의 작업은 일종의 네트워크 작업이 된다는 선언이다. 네트워크의 실행은 기존의 건축주·투자자·사용자 및 기술 컨설턴트와의 공조 형태에서 디자인 엔지니어·재정담당자·경영 분야 권위자·프로세스 전문가·디자이너 및 스타일리스트 등을 포함하는 전방위로 확장된다.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마치 영화를 제작하는 것과 같은 네트워크 방식으로 건축의 프로세스가 진행될 것이라는 시각은 신선하면서도 시사점이 많다. 어디에나 필요하다면 접속되고 연결되는 것이 이 시대 변화의 한 흐름이고, 유엔 스튜디오는 그것을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엔 스튜디오는 유엔과 같이 다국적 큰 집단이 될 수도 있고 (상황과 시기에 따라) 스튜디오와 같이 작은 아틀리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론의 탐닉 - 철학하는 건축가이자 과학하는 건축가
유엔 스튜디오의 작품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 그룹의 리더인 벤 판베르켈의 사유와 이론적 탐닉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주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푸코(Michel Foucault)나 들뢰즈(Gilles Deleuze)에 대해서 언급하고, 이들에게 영감을 얻었음을 이야기한다. 이름도 생소한 독일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나 프랑스의 수학자 푸앵카레(Jules Henri Poincare) 등의 이론들을 심심치 않게 거론하기도 한다. 또한 과학과 수학의 새로운 유형인 '뫼비우스의 띠'나 '클라인 병' 그리고 '세이페르트의 표면들'을 자주 다이어그램으로 활용한다.

"1990년대 이후의 건축은 과학의 또 다른 매력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 들뢰즈의 개념과 이에 대한 건축 분야의 탁월한 해석에 영향 받은 것입니다. 건축가들은 들뢰즈의 '매끄러운(smooth) 공간'과 '홈 패인(혹은 선조적(striated)) 공간', '(인간의) 동물 되기', '다이어그램', '주름(fold)'의 개념을 공간적·구조적·조직적으로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이와 함께 복잡한 기하학적 구조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가능해졌습니다. 건축가들은 신중한 태도로 과학의 응용 가능성을 중시하면서 주류의 공학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개념의 확장을 추구하면서 자신들의 시도가 정당화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모더니즘과 표준화라는 도그마는 근본적인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통해서 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위축이 아니라 확신임을 보여 주는 프로세스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에서 '건축가들'이나 이와 관련된 '이들은', '우리는'이라는 단어 대신 '벤 판베르켈'이라는 이름을 넣으면 그대로 자신에 대한 설명이 된다. 여기서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지만, 이 중에 다이어그램은 현대 건축에서 흥미로운 주제이니 조금 더 들여다보자.

상당수 현대 건축가들이 들뢰즈의 개념을 단지 형태적인 아이디어로 적용한다. 예를 들어 주름진 형태, 유선형의 매끈한 형태, 비정형화된 건축 모습, 다이어그램을 형태의 시각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등이 있다. 반면 판베르켈은 예를 들어 '주름'이라는 개념을 형태가 아니라 새로운 건축을 만드는 영감으로 이해한다. 즉 주름의 개념을 공간적·구축적으로 특별한 것을 만드는 것, 차별화된 효과로 해석하는 것이다. 다이어그램도 형태를 만들거나 컴퓨터를 활용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고'를 위한 도구로 정의한다.

어떤 건축가보다도 유엔 스튜디오의 다이어그램 개념이 푸코나 들뢰즈가 말했던 다이어그램 개념과 유사하다. 유엔 스튜디오에게 다이어그램이란 형태적 개념이 아니고 "권력을 실행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눈에 보이는 명확한 제도나 장치와 같은 거시적 모델이 아닌, 미시적 권력이 작동하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틀 혹은 배치 관계를 의미"(푸코)하거나, "현실의 다양성을 종합하지만 그들의 변이와 다양성 혹은 일탈을 포함하는 느슨한 체계"(들뢰즈)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유엔 스튜디오에 다이어그램은 최종 형태의 결과물이기보다는 열린 가능성을 내포하는 창의적이고, 자기 스스로 생성 가능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판베르켈은 철학과 과학에 탐닉한다. 왜냐하면 철학과 과학이 발견한 새로운 사실들이 건축에 새로운 비전과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된 비트루비우스(Vitruvius)의 건축가에 대한 정의가 기억난다.

"건축가란 한편으로는 철학자이고, 한편으로는 과학자이다."

공간의 탐닉 - 철학하는 건축가이자 과학하는 건축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판베르켈은 다이어그램이나 주름 등의 개념을 형태가 아니라 사고하는 열린 수단이자 공간적·구축적·특이성의 표현이라고 이해한다. 유엔 스튜디오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 중 하나는 공간에 있다. 즉 그들이 표방하는 '뫼비우스의 띠', '클라인 병', '세이페르트의 표면' 등과 같은 다이어그램들은 형태와도 관련이 있지만 주로 공간에 있다.

'뫼비우스의 띠'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으므로 한 면만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 면에서 쭉 이어가다 보면 모든 면을 지나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오게 된다. '클라인 병'도 이와 비슷하다. 이것은 '뫼비우스의 띠'를 닮게 만든 2차원 평면으로, 방향을 정할 수 없는 병 모양이다. 즉 안과 바깥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병을 따라가다 보면 앞면에서 뒷면으로 갈 수 있다. '세이페르트의 표면'은 방향성의 표면으로 하나의 경계 요소가 매듭 방식으로 끼어 있어서, 면들은 방향을 바꾸고 젖혀지기도 한다.

이런 다이어그램들은 형태적인 특징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공간과 흐름의 무한한 연속성이라는 측면이 더욱 강조된다. 이런 개념이 건축화되고 공간화된 뫼비우스 주택, 아른하임 중앙역, 벤츠 박물관을 보면 형태의 표식성보다 이들 다이어그램이 강조하는 끊임없이 연결되고 이어지는 공간의 유동성에 새삼 놀라게 된다. 이곳에서 방향성이나 공간의 크기 변화는 중요하지 않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이어지고 연결되는 공간의 이어짐과 그에 따른 변화만 있다. 이것은 그들이 만든 건축이 고정체가 아니라 이동체이거나, 심지어는 살아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능케 한다. 그것은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세계이다.

재료의 탐닉 - 패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유엔 스튜디오는 때때로 세상을 놀라게 하거나, 세인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들의 가치는 프랭크 게리나 자하 하디드처럼 형태적인 것에 있지 않다. 피터 줌터처럼 고요한 침묵과 정숙에 있지 않다. 안도 다다오나 SANAA처럼 미니멀한 것에도 있지 않다. 오히려 건축적인 것으로 한정짓는다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간의 연출이나 이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패션 디자이너 같은 계속 변화하는 외피 디자인과 재료 감각에 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새로운 화두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건축도 패션으로 보라.

우리나라 서울에서 2004년에 개·보수한 갤러리아 백화점은 이런 유형을 보여 주는 대표작이다. 사실 개·보수 프로젝트는 특별한 건축적 조작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제약은 오히려 새로운 옷을 입히기에 최적의 조건이 되었다. 여기서 그들은 빛에 반응하는 외피를 통해, 빛의 향연을 연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롭고, 살아 있어 가장 변화하는 재료를 택한 것이다. 의외의 결과에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은 백화점 외벽 전체에 지름 83센티미터의 동그란 유리 디스크를 설치하고(무려 4,330개), 그 뒷면에 빛의 삼원색(적·녹·청)으로 발광하는 특수 LED 조명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두 장의 유리 디스크 사이에 끼워 있는 반투명 셀로판지 형태의 홀로그래픽 포일이 부착되어 보는 방향과 위치에 따라 무지개 빛깔이 건물 전면에 끊임없는 변화를 주고, 밤에는 컴퓨터 시스템과 연결된 LED 조명이 유리 디스크를 다이내믹하게 비추며 환상적인 조명 쇼를 보여 준다. 이러한 빛의 마술쇼는 네덜란드 알미르 라데팡스의 오피스 디자인과 다시 우리나라에 빛의 선물을 준 천안의 갤러리아 백화점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엔 스튜디오는 유리, 금속 패널, 유리 디스크, 홀로그래픽 포일 등 새로운 재료를 통해 건축에 빛의 옷을 입힌다. 그래서 건축은 공공을 위한 패션 모델이 된다.

"건축가는 미래의 패션 디자이너가 될 것입니다. 캘빈 클라인에게 배운 건축가는 미래를 준비하고, 다가오는 이벤트를 사색하고 예상하며, 거울로 세계를 보는 일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로 인해 앞으로는 패션 디자이너가 건축가들에게 영감 받을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상상의 탐닉 - 마법사이자 건축가
판베르켈은 네덜란드 중앙에 위치한 위트레흐트라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 매주말 아버지와 산책하며 도시에 새로운 건축과 구조물들이 들어서는 것에 매료되었다. 그는 건축가가 되겠다는 꿈을 일찍부터 찾았다. 서양 건축 자료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 책인 비투르비우스(스스로 이론가. 철학자·수학자·과학자·기술자인 동시에 건축가라 했던 건축가)의 《건축 10서》에는 건축가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건축가는 문장에 능해야 하고, 그림에 숙달해야 하며, 기하학에 정통하고, 역사를 알며, 철학자의 말을 듣고, 음악을 이해하고, 의술을 몰라서는 안 되고, 법률가가 논하는 바를 알아야 하고, 하늘의 별과 천체 이론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

아마도 판베르켈은 비투르비우스의 유명한 이 글귀를 보았을 것이고, 깊은 인상을 받았음에 틀림이 없다. 그의 행보는 정확히 비투르비우스가 이야기하는 건축가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판베르켈은 이론가이며, 철학자이며, 수학자이며, 과학자이며, 기술자이며 건축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공간 연출가이며, 패션 디자이너이며, 마법사이기도 하다. 비투르비우스가 그 시대의 로마 건축을 이끌었다면, 판베르켈은 현대를 사유하고 그것을 건축화 한다.

판베르켈이 사유하는 현대의 특징은 유동성이고, 경계 없음이고, 혼성과 변화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동물-식물-기계가 공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건축은 '살아 있는 건축 만들기'이거나 '건축을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기'이다. 끊임없이 연결되고 이어져서 유동성이 있는 살아 있는 공간이 되거나, 외피가 시시각각으로 변화해서 살아 있는 표피가 되거나, 바닥이 벽이 되거나 다시 벽이 천장이 되어서 끊임없이 경계를 허문다. 그 끊임없음의 '윤회' 속에서 인간은 소통을 하고, 관계를 맺고, 성찰을 한다. 그 연결은 인간을 넘어서 동식물에까지 이어지고 다시 환경과 기계에까지 지속한다. 그것을 위해 그는 오늘도 탐구한다. 건축이 고정되고 한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어지고 연결되는 실체가 되기 위해서.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그의 '마법'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의 '마법'이 세상에 통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유엔 스튜디오 [UN Studio] - 살아 있는 건축을 만드는 마법사 (건축을 시로 변화시킨 연금술사들, 2013. 11. 10.,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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